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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침공에 투입된 터키군 M-47 전차 주력전차 MBT

터키는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 북부 지역을 점거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됐다.

사진은 침공당시 투입된 터키군 M-47 전차이다. M47은 M4 Sherman과 M46 Patton 전차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어 1951년 ~ 1953년 사이에 8,676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M48과 M60으로 다시 교체되고, 생산된 M47들은 대부분 동맹국들에 공여되었다. 대한민국도 그 중 한 나라로서 1959년에 육군용으로 463대, 1963년 ~ 1964년에 해병대용으로 68대 등 총 531대를 도입했다. 이 전차를 도입하면서 M36이 퇴역하고 육군과 해병대는 M4와 M47을 운용하게 됐다. 미국이 이 전차를 조기에 퇴역시킨 것은 연비 문제가 컸다. 878리터의 가솔린으로 130km밖에 주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전차를 실전에 투입한 적은 없으며, 터키가 1974년 키프로스 침공 당시 사용했고, 6일 전쟁 중에는 요르단,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에 파키스탄,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 이란이 사용했으며, 크로아티아도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을 벌이며 실전 투입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주로 동부전선의 산악지대에서 보병 지원 및 이동 포대 정도로 사용하였으며 2006년 말 ~ 2007년 사이에 대부분 퇴역했고, 100여대가 예비물자로 보관되어 있다는 설도 있다.


1974년 키프로스의 친그리스 정권이 그리스와의 합병을 위한 쿠데타를 시도하자, 터키가 터키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침공하여 키프로스 섬 북부 약 39%가 북키프로스로 만들었다. 터키는 이 사건을 키프로스 평화 작전 (Kıbrıs Barış Harekâtı)이라고도 부른다.

섬이름도 각기 다른데 그리스어로 Κύπρος (키프로스), 터키어는 Kıbrıs (크브르스)이고 영어로는 Cyprus (사이프러스)라고 부른다.


터키 침공후 남북으로 갈린 이 섬에도 한국처럼 DMZ같은 분계선이 존재하게 되면서 키프로스의 수도이자 전세계 유일의 분단도시가 된 니코시아가 있고, 국경에 맞닿은 바로샤(Varosha)는 터키령이 되었으나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처럼 양 군이 대립하고 온갖 무기들이 설치되면서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덕분에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손꼽히던 휴양도시 바르샤에 막대한 투자를 한 그리스나 해외 투자자들은 지금도 터키 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사람이 없어진 도시의 높은 빌딩과 호텔 건물과 아스팔트 사이로 온갖 풀들과 나무들로 뒤감기며 자연 그대로의 상채로 회복되면서 키프로스 전역에서 멸종 상태거나 희귀종이던 동물들이 알아서 여기로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DMZ처럼

그러나 돈벌이에 환장한 국가와 투기꾼들 덕분에 개발 열풍이 불면 아토피에 시달리며 살텐데도 또다시 숲과 나무를 엎어버리고 콘크리트로 덮고 콘크리트를 세우면 좋다는 것들은 다~~ 어떻게?......


M47 전차는 M26·M46 전차로 이어지는 1940~50년대 미국의 주력 전차 계보를 계승하는 전차 중 하나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주력으로 사용한 M4 셔먼 전차는 이미 당시에 독일·소련 전차에 비해 성능상 열세였다. 기갑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새롭게 개발한 전차가 M26 퍼싱 전차지만 제대로 운용해 보지도 못하고 세계대전이 끝나고 말았다.

전후 미국은 M26 전차로도 기갑전력의 우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 개량형 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과 M26 전차의 엔진부를 개량한 M46 전차를 개발했다. M46 전차는 6·25전쟁에 투입돼 공산군 측의 T-35·85 전차를 상대하는데 크게 공헌했지만 단기간에 급조된 전차로 전체적인 성능상의 부조화가 많았다. 이에 M46 전차의 차체와 포탑의 형태를 바꾸고 전면 장갑의 경사각을 높인 개량형을 다시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52년에 개발이 완료된 M47 전차다.


M47 전차도 여러 가지 성능상의 문제점이 지적돼 새롭게 신형 M48 전차 개발을 시작했지만 M48 전차의 개발 진전을 기다리지 않고 M47 전차 생산을 강행했다. 디트로이트(Detroit) 전차 공장과 아메리카 로코모티브(Locomotive)사는 52~53년 짧은 기간 동안 무려 8676대의 M47 전차를 생산했다.

미국에서 M48 전차 생산이 시작된 후 M47 전차는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대만 등 미국의 17개 동맹국에 제공됐다. 한국은 59년 M47 전차 463대를 도입하고 63~64년 68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우리 군에서는 육군·해병대가 M47 전차를 운용했으며 현재 상당수가 퇴역한 상태지만 일부 부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미 육군 당국은 M47 전차에 그렇게 만족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전차였다. 특히 M47 전차는 그 이전의 미군 전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정확한 사격을 위해서는 사거리 측정이 필수적이지만 초기의 전차들은 단순히 눈으로 거리를 측정했기에 포수의 숙련도에 따라 명중률의 편차가 컸다.

하지만 M47 전차는 M12 입체식 거리측정기(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를 장착, 비교적 정확한 거리 측정이 가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판터 F 전차에도 이와 유사한 거리측정기가 장착된 사례가 있으나 대량 양산된 전차 중에서 거리측정기가 장착된 것은 M47 전차가 처음이다.

보통 전차가 차내에 전차 포탄 30~50발을 탑재하는데 비해 M47 전차는 71발을 탑재할 수 있는 것도 무시 못할 장점이다. 또 M47 전차에 탑재된 가솔린 공냉식 엔진 AV-1790은 신뢰성이 높아 고장이 잘 발생하지 않는 것도 호평받았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 때문에 무려 50여 년 동안이나 M47 전차가 일선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글쓴이 김병륜lyuen@dema.mil.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