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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흑표를 둘러싼 논란: 이대로 좋은가? 사설& 오피니언 모음


흑표를 둘러싼 논란: 이대로 좋은가?

2014.10.24

플래툰
(이 글은 11월호 플래툰에 개제된 기사입니다. 책이 마감된 직후, 흑표의 가속력 ROC가 8초에서 10초로 완화되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 때문에 마지막 부분을 약간 수정한 뒤 홈페이지에 올리게 됐습니다. 따라서 해당 기사는 9월 말 시점 정보와 최근 정보가 다소 섞여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국산 차기 신형 전차인 K2 ‘흑표’를 놓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9월 29일자 한국일보에는 “K2전차, 핵심 방어장비 장착 안 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정부가 능동파괴체계(APS)를 함께 개발했지만 실전 배치된 전차에는 장착하지 않은 것으로 28일 확인됐다(중략)”고 보도한 뒤 ‘핵심 전투장비를 전력화에서 제외시키면서 <무늬만> 명품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여기서 ‘비판’을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인지부터 의아한 이야기다. 애당초 군이나 업계에서 흑표 초도 양산분의 능동 파괴형 방어체계를 제외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고, 그것이 비판 여론을 불러 일으킨 일도 사실상 없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흑표의 APS, 즉 능동 방어체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위 기사에서는 마치 APS가 능동파괴체계 하나만 있는 것처럼 잘못 적었지만 실제로는 둘로 나뉘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유도교란형(이하 교란형), 또 하나는 능동파괴형(이하 파괴형)이다. 교란형은 적 미사일(유도탄)이 접근하면 미사일의 유도장치를 교란하는, 즉 혼란에 빠지게 하는 특수 연막탄을 미사일쪽으로 발사, 그 명중률을 크게 낮추는 것이다. 파괴형은 접근하는 미사일을 아예 대응탄으로 파괴시켜 버리는 말 그대로 요격 시스템이다.

그런데 시제 차량부터 초도 양산분 100대에는 교란형 대응장치만 장착되고 파괴형은 장착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

일단 두 체계는 몇 가지 첨단 센서를 사용한다. 그런데 교란형과 파괴형은 현재 동시에 장착하면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여기에 파괴형은 전술 교범이나 훈련등 아직 운용을 위해 완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대응탄이 폭발하면서 전차 자체나 주변의 아군등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라는 것이 그 자체만 개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쓰기 위해 마무리할 부분이 많은데, 위의 한국일보 기사는 이런 사실은 간과하고 그저 ‘개발됐는데 장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부각시키고 있다.

또 파괴형까지 다 장착하면 전차 단가는 90억 이상으로 치솟는다고 하는데, 그러잖아도 개발 지연과 양산 지연으로 인해 비용 부담을 받는 군으로서는 단가를 10억 가까이 치솟게 하는 파괴형까지 장착하기는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사실 파괴형 APS는 아직 이스라엘과 러시아만이 실전배치를 한 상황이다. 또한 파괴형 APS는 대응탄의 폭발로 아군에게도 피해가 가는 등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애당초 흑표의 개발 일정 자체가 2009년부터 교란형 APS만 장착한 차량의 실전배치를 시작하고 파괴형은 개발이 끝나고 제반 문제가 다 해결된 뒤 실전배치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즉 파괴형 APS가 없는 상태로 실전배치된 것이 전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왜 관계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문제를 이제 와서 ‘무늬만 명품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트집을 잡을까?

(트로피 능동방어체계를 장착한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Mk.4. 능동 방어체계는 현재 이스라엘과 러시아만이 실전운용중이다. 문제의 기사 주장대로면 이 두 나라를 뺀 세상 모든 전차에는 '핵심 방어장비'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뭐가 진짜 핵심인가

게다가 교란형 APS도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전차의 생존성을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여주는 장비다. 즉 파괴형이 없다고 방어 시스템이 ‘무늬만 명품’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는 이야기다.

애당초 APS라는 체계를 ‘핵심 전투장비’이며 ‘이것이 없으면 무늬만 명품’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도 심각한 왜곡이다. 전차가 명품이냐 아니냐는 여전히 자체의 장갑, 사격 통제 시스템 및 주변 상황 인식 능력, 주포 자체의 위력과 명중률, 그리고 기동력이 좌우한다. 한마디로 APS는 핵심 전투장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주장대로면 APS가 아직 없는 독일의 레오파르트2, 프랑스의 르클레르, 미국의 M1A2, 일본의 10식 전차등 쟁쟁한 주력전차들이 전부 ‘핵심 전투장비가 제외된, 무늬만 명품’인 셈이다. 기사 도입부부터 기자가 해당 분야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증한 셈이다.

게다가 이 기자는 기사 말미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문구를 덧붙였다. “정부가 실제 전투능력은 소홀하게 다루면서… 작전 요구성능(ROC)기준을 맞추기 위해 파워팩의 내구성과 가속성능 향상에만 치중해 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주객전도도 이 정도면 정말 가관이다. ‘실제 전투능력은 소홀하게 다루면서 파워팩의 내구성과 가속성능 향상에만 치중’ 이라고?

파워팩, 즉 엔진과 변속기를 합친 동력장치의 내구성과 가속성이야말로 핵심 전투능력중의 핵심이다. 전차의 3대 핵심 요소인 방어력-공격력-기동력 중 기동력은 APS와는 비교도 안되게 중요한 부분이다.

심지어 군 당국에서는 K2의 기본 방어력이 상당히 높은데다 교란형 APS까지 장착된 상황에서 굳이 비싸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파괴형 APS까지 추가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자신의 어긋난 논점을 주장하기 위해 어처구니 없는 주객전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기사의 핵심은 이 부분에 있다. ‘파워팩의 내구성과 가속성능 향상에만 치중’. 한마디로 APS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국산 파워팩을 채택하지 않으려 하는 군 당국을 비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은 같은 일간지에 9월 23일자로 난 기사, 즉 ‘0.7초 늦는다고… K2전차 국산화 물거품 위기’라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겨우 0.7’초가 아니라 ‘무려 9%’

9월 23일자 동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흑표는 국산 파워팩을 장착한 상태로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32km까지 가속하는데 8.7초가 걸린다. 이는 군의 요구조건인 8초를 못 충족시키는 것이라 이대로는 채택시킬 수 없는데, 겨우 0.7초 늦는다고 다른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국산 파워팩을 외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심지어 이 기사는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한 초도 양산형 흑표를 ‘반 국산’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비하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일단 ‘겨우 0.7초’라는 표현부터 심각한 ‘언론플레이’에 다름아니다. 0.7초는 일반인의 감각으로 보면 정말 미세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ROC와의 비율로 계산하면? 약 8.75%, 즉 9%다.

각종 무기나 장비등을 납품할 때 보통 요구조건(ROC)에서의 허용 오차로 보는 수준은 -장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5%정도다. 9~10%정도면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불량으로 간주하고 업체에 개선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위 기사의 제목에서 0.7초를 9%로 바꿔보시라. 아마 어감이 크게 바뀔 것이다.

게다가 흑표 파워팩은 원래 독일제를 장착하려다 개발 업체에서 무리하게 국산화를 한다고 주장해 국산화가 시작됐다. 원래 예정대로면 2009년에는 실전배치가 이뤄져야 했으나 개발 업체가 계속 완성에 실패하는 바람에 2014년으로 늘어진, 아무리 봐도 파워팩 국산화 주도업체인 D사가 욕을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원래 예정대로면 일본의 10식(2011년 실전배치)보다 먼저 실전에 배치됐을 물건이 무리하게 국산화를 주장한 모 업체의 억지로 인해 늦어져 결국 일본에 뒤쳐진 꼴이다. 군이 도대체 뭐가 예쁘다고 9%나 미달한 성능의 장비를 ROC까지 바꿔가며 받아줘야 할까.

게다가 이런 감정적인 문제만 있는게 아니다. 8초라는 ROC자체도 가혹한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이, 아주아주 많이 봐 줘 업체에게 유리하게 조정한 ‘물타기 ROC’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다.

(2007년에 공개된 흑표의 기동시제 차량. 이 때만 해도 2009년에는 실전배치가 가능하다고 했으나 파워팩 국산화 지연으로 인해 무려 5년이나 늦춰졌다. 사진: 국방과학연구소)

‘겨우 0.7초’가 아니라 ‘무려 2~3초’

ROC보다 겨우 0.7초 늦었다고 항변하는 업체의 말만 들어보면 8초라는 ROC는 굉장히 달성하기 힘든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애당초 흑표의 국산 파워팩 ROC로 지정된 8초는 ‘무리하게 빠른’것이 아니라 선진국들에 비해 2~3초 가량 뒤쳐진, 국산 파워팩 개발업체를 매우 많이 배려해 줄여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번 사태에 분기탱천한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인터넷에 많이 퍼졌지만, 해외 선진국 전차들의 가속성능 수준을 좀 보자.

르클레르(프랑스, 1994년): 5초
M1A1HA(미국, 1990년): 6.8초
M1A2(미국, 1992년): 7.2초
레오파르트 2A4(1985): 6초

다들 흑표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 않다. 게다가 흑표가 56t인 반면 레오라르트2A4가 약 55.5t, 미국의 M1A2는 무려 62t이 넘는다. 가장 가볍다는 르클레르도 54t이 넘는다. 한마디로 비교된 해외 전차들 모두 무게는 흑표와 대동소이하거나 숫제 훨씬 무겁다. 한 술 더 떠 엔진 출력들도 전부 흑표와 같은 1,500마력이다. 더 무거운 덩치로, 같은 엔진을 쓰는데 가속은 하나같이 우리 군의 ROC보다 더 빠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래도 외국 첨단 탱크들하고 비교하면 우리가 좀 떨어져도 봐줘야 하는거 아냐?”라고.

위 전차들은 선진국 주력 전차이기는 하지만 첨단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다들 1980년대~1990년대 사이, 즉 20~30년 전에 개발된 차량들이다. 아무리 우리가 전차 개발 후발국이라지만 최소한 해외 전차의 20년 전 수준은 맞춰야 할 것 아닌가. 한마디로 해외 기술보다 20년은 족히 뒤쳐진 국산화 업체를 배려하기 위해 ROC를 해외의 20년 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까지 낮춰주는 파격적 배려를 했더니 업체는 그것도 못 맞추고는 자기들이 더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그 요구조건마저 깎아야 한다고 우기는 상황이다.

구식 미사일 상대로도 불충분

게다가 흑표의 0.7초는 정말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대전차 무기는 물론, 당장 당면한 주적인 북한의 대전차 무기및 전차와의 싸움에서도 나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9월 23일자 기사를 보자. “사거리 3,000m인 적의 대전차 유도탄(AT-3)이 도달하는데 25초 걸리기 때문에 전차가 표적에서 100m만 기동하면 피해를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며, “K2로 국산 파워팩을 장착하면 정지상태에서 시속 32km까지 <9초가 걸린다고 해도> 이 속도면 25초 안에 182m를 이동할 수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위의 ‘전문가들’이 누구를 뜻하는지도 의문이거니와, AT-3(정식 명칭은 9M14 말류트카)을 거론하며 이것에 대응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부터가 심각한 왜곡이다.

구 소련이 개발한 미사일인 AT-3은 1963년에 실전배치됐으며 첫 실전경험은 1972년의 일이다. 실전경험만도 42년 전의 일인, 그야말로 구식중의 구식이다. 유도방식도 사수가 미사일을 직접 조종간으로 움직이는 ‘100%수동’이다. 그래, 겨우 50년 전의 수동식 골동품 미사일을 상대할 수 있으니 문제 없다고 퉁치겠다는 말인가?

설령 북한에 AT-3만 있다 쳐도 위의 주장은 오류가 심각하다. 적 미사일이 3,000m 밖에서 발사되는 순간에 전차쪽에서 즉각 반응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발사 시점과 전차의 대응 시점은 인간의 반사신경이나 상황 인식 시점 등 여러 요소로 인해 결코 같을 수 없다. 즉 위에서 언급한 25초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한 숫자이지 실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여유가 아니다.

더군다나 적 미사일이 언제나 3,000m 밖에서 발사된다는 보장은? AT-3은 500미터 밖에서도 발사 및 유도가 가능하다. 사수가 목숨을 걸고 500m까지 접근해 사격한다면 도달 시간은 25초가 아니라 5~6초로 확 줄어든다. 물론 500m까지 접근하기는 미사일 사수의 안전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어렵겠지만, 실제로는 1,000~1,500m 등 최대 사거리보다 많이 짧은 거리에서 발사될 확률이 결코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대부분이고 특히 전방 지역에는 3,000m나 탁 트인 개활지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즉 ‘25초 걸리니까 가속 9초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결코 사실과 다르다.

AT-3만 있는게 아니야

더군다나 해당 기사는 AT-3만을 거론하며 교묘하게 물타기를 하고 있다. 실제 북한군의 주력은 이미 AT-3이 아니라 AT-4(정식 명칭 9K111 파곳)로 업그레이드된지 오래인데 말이다! 이미 각종 퍼레이드나 홍보 영상등을 통해 북한은 AT-4를 대량으로 배치했음을 과시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미사일은 심지어 러시아에도 역수출되어 생산능력이 충분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AT-4는 AT-3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미사일 속도가 거의 190m/s에 달해 110m/s를 조금 넘는 수준인 AT-3보다 월등히 빠르다. 더군다나 유도방식도 SACLOS, 간단하게 말해 사람이 손으로 조종하는게 아니라 컴퓨터가 조종하기 때문에 떨쳐내기가 훨씬 어렵다. AT-3같으면 구식 전차가 지그재그로 이동하는 정도로도 숙련되지 못한 사수는 명중에 실패할 수 있지만 AT-4는 그럴 확률이 훨씬 낮다.

게다가 북한의 AT-4가 원래의 제원과 동일하다는 보장도 없다. 북한제 AT-4는 ‘수성포’라는 이름으로 원래보다 조금이라도 개량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도장치도 개량된 것이 분명하며, 미사일 자체도 탄속이 더 빨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AT-4자체도 최신 기종이 아니라 개발된지 40년이 넘은 대단히 오래된 기종이다. 북한이 아무 개량도 안하고 오리지널대로 그냥 만든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하다못해 탄속이 10m만 늘어나 200m/s가 되기만 해도 전차에 요구되는 대응시간은 또 줄어든다.

게다가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당장 북한의 신형 전차 ‘선군호’는 125mm활강포를 장착중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북한도 포발사 미사일, 즉 전차의 주포에서 발사되는 대전차 미사일을 운용할 플랫폼을 충분히 갖췄다는 이야기다. 특히 125mm활강포를 도입한 북한이 이 포의 주요 장점중 하나인 포발사 미사일을 무시했을 턱이 없다. 최소한 북한이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것은 사실이며 소량이라도 도입되어 운용중이거나 최소한 도입을 서두르는 중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포발사 미사일의 탄속은 AT-4와도 또 차원이 다르다. 포발사 미사일중 상당히 구식에 속하는 AT-8(정식 명칭 9K112)조차 최대 탄속 800m/s, 평균 탄속 350~400m/s 정도에 달한다. 3,000m도 아니고 4,000m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겨우 9~10초. AT-3기준으로 25초 생각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가는 호된 꼴 당하기 딱 좋다. 게다가 AT-8도 1970년대의 산물이다. 더 발달된 기종들도 얼마든지 있으며 북한이 입수에 성공한다면 분명 더 발달된 기종을 입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 쯤 되면 0.7초가 문제가 아니라 ROC인 8초 그 자체마저 위태롭다.

무시 못할 가능성들

이 정도만 봐도 ‘0.7초 늦는게 뭐가 문제냐’는 모 업체의 항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지만, 실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지금 북한에 위에 언급한 것들 이외의 위협이 없다는 보장조차 전혀 없으니 말이다.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코넷이다. 러시아에서 90년대에 새로 개발한 대전차 미사일인 코넷은 1.2m두께의 철판을 관통할 수 있는 엄청난 관통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사거리와 명중률도 기존의 러시아제 대전차 미사일들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간단하게 말해 속도 자체도 더 빨라졌으며 그만큼 피하기도 힘들어졌다.

코넷의 속도는 버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250~300m/s정도다. 현재 러시아 메이커인 KBP의 홈페이지에 나온 버전(9M133M-2)은 300m/s로 소개되고 있다. AT-3의 거의 3배이며 AT-4보다도 훨씬 빠른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북한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코넷은 정식 수출된 나라만 해도 11개국에 달한다. 그 중에는 시리아도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시리아에 수출된 미사일들은 꽤 많은 양이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이라크 반군등에 흘러들어갔다. 코넷은 실전에서 방어력이 높기로 소문난 이스라엘군 전차에 꽤 큰 타격을 입히면서 일약 대전차 미사일의 스타중 하나로 등극한 물건이다. 북한이 과연 이런 물건을 입수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까? 심지어 우방국이나 우호적인 무장 단체가 손에 넣었으니 입수할 수 있는 방법조차 나름 열려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중국 역시 무시 못할 위협이다. 중국군 그 자체가 아니라 중국제 대전차 미사일이 북한에 흘러들어가 실전배치되었을 가능성 말이다.

중국제 군용 장비는 이미 실제로 북한에 흘러들어가고 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차량이 중국제였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도 아니고, 지프나 트럭등의 군용 차량중에는 공공연하게 중국제가 많이 보이며 헬멧이나 기타 다양한 장비들이 실은 중국제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명목상으로는 방어용 무기인 대전차 미사일을 몰래 북한에 수출했을 가능성 정도는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중국이 최신형 대전차 미사일을 수출했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에 개발된 비교적 구형 장비인 HJ-8정도는 수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HJ-8은 꽤 구식인 물건이지만 그래도 탄속이 초속 220m/s로 AT-3은 물론 AT-4보다도 우월하다. 즉 이것 역시 ‘8.7초로 충분’같은 속 편한 소리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교란형 APS가 있다 해도

물론 이런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교란형 APS로 미사일 교란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돈 더 써서 파괴형 APS를 달거나!’

APS는 만능이 아니고 앞서 언급했듯 핵심 방어장비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차 자체의 기동성을 통한 회피나 주 장갑의 맷집에 대한 보조일 뿐이다. 특히 APS는 전차의 기동성과 제대로 콤비를 이뤄야 그 효과를 100%발휘할 수 있으며 교란형은 더더욱 그렇다. 교란형은 어디까지나 적 대전차 미사일의 명중률을 낮추는 것이지 아예 격추하거나 100% 못 맞게 막는 것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전차 자체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준다는 개념에 가깝다. 즉 전차의 기동성이 불충분하다면 교란형 APS의 능력도 그만큼 감소된다는 이야기다.

파괴형 APS라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응탄의 숫자는 분명 한계가 있으며, 또 대응탄으로 요격한다 해도 적 미사일이 파괴되면서 폭발이라도 하면 파편등으로 전차 자체에도 나름 피해가 생길 수 있다. 한마디로 파괴형 APS로 적 미사일이 요격되는 것만 믿고 그 자리에 그냥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 2차 피해나 추가 공격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역시나 기동성이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실 흑표는 원래 설계 개념이 ‘맷집과 APS, 높은 기동력을 모두 복합해’ 최선의 방어력을 발휘하는 물건이었다. 기동력 면에서도 적의 공격이나 조준을 높은 가속력으로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었고, 애당초 1,500마력이라는 강력한 파워팩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ROC자체도 1,500마력 파워팩에서 기대될 수 있는 수준으로는 최저한도의 한심한 수준까지 낮춰 원래의 방어 개념 실현이 곤란해지는 마당인데, 이제는 여론 압박을 통해 그 수준을 9~10초, 쉽게 말해 30년 전에 개발된 K-1전차(1,200마력짜리 파워팩을 단) 수준으로 낮춰 아예 원래의 설계 개념을 완전히 폐기시키려 애쓰는 것이다.

누가 문제인가

자. 과연 여기서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무려 9%나 ROC에서 미달된 제품을 들이밀고는 ‘겨우 0.7초’라고 주장하며 50년 전에 개발된 대전차 미사일만 피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그 누군가인가, 아니면 이미 업체의 주장에 굴복하여 ROC를 낮출대로 낮추고도 또 ‘여론’에 등을 떠밀려 ROC를 낮춰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군일까?

애당초 8초라는 ROC도 군과 업체가 협의한 끝에 업체에서 ‘확실히 할 수 있다’고 해서 합의된 부분이다. 이렇게 장담해 놓고는 이제 와서 요구조건이 가혹하다고? 애당초 예산 과다로 파괴형 APS장착이 곤란해진 원인 중 하나가 국산 파워팩 납품지연과 그로 인한 전체적인 예산초과-실전배치 지연 아닌가. 흑표는 앞서 언급한대로 원래 예정대로면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 2009년부터 실전배치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국내 모 업체가 독일제보다 싸고도 동일한 성능으로 납품이 가능하다고 해 국산으로 바꿨다가 그 국산 파워팩의 납품이 한없이 지연되는 바람에 실전배치가 2014년까지 밀린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살펴봤지만 해당 업체가 0.7초라고 하는 지연은 ‘겨우 0.7초’가 아니라 ‘무려 9%’, ‘겨우 0.7초’가 아니라 ‘무려 2~3초’다.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파워팩 개발업체가 가혹하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정말 몰염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물론 파워팩은 전차의 심장이라며 이것이 국산화되지 않고 독일제를 장착하면 흑표 전차는 ‘국산이 아니라 반(半)국산’이라는 식의 감정적 반응도 적지 않고, 또 국산 파워팩을 달지 않으면 수출에 지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아니다. 애당초 ‘반(半)국산’이라는 주장 자체가 원래 있던 것도 아니고 ‘이상할 정도로 파워팩 제작사에 우호적인’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생긴, 일종의 ‘만들어진’ 여론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국산 전차인 K1과 K1A1도, 국산 자주포인 K9도 모두 독일제 파워팩을 국내에서 면허생산해 장착해왔다. 1980년대부터 그랬으니 무려 30년 가까이 그래온 셈이다. 그 동안 그 누구도 이것들이 ‘국산이 아니라 반 국산’이라는 식으로 폄하해 온 일이 없다. 해외에서도 이스라엘의 주력전차 멜카바는 엔진을 미국제로만 장착해왔으나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이스라엘제가 아니라 반 이스라엘제’라며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느닷없이 흑표에서는, 그것도 흑표의 국산 파워팩 개발이 난항을 겪고 독일제를 수입해 장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어디서부터인가 이런 식의 ‘여론’이 들끓었다. 도대체 왜일까.

이 이상은 추측의 영역이니 더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현재의 상황은 결코 보기 좋은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10월 22일자 한국일보 보도에 의하면 합참은 ‘비난 여론에 못이겨’ 8초의 ROC를 10초로 재조정했다. 도대체 그 비난 여론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상당히 궁금할 따름이다.

8초조차 선진국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진 수준인데 그것을 이제는 K1수준으로 떨어트린 상황, 과연 이 정도까지 전차 성능을 떨어트려가며 업체를 봐 줘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