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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여왕의 암울한 귀환, 항모 HMS Queen Elizabeth 진수식 항공모함

7월 4일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로지스(Rosyth) 조선소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영국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HMS Queen Elizabeth R08)함 진수식이 열렸다. 전통적으로 군함의 진수식에서는 배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여성이 샴페인 병을 배에 부딪치게 해 깨뜨리는데, 이날 행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행사가 열린 조선소가 스코틀랜드 지방인 점을 고려해 샴페인 대신 위스키 병을 깨뜨리며 항모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했다.


HMS Queen Elizabeth (R08) 항공모함은 영국 해군의 눈물겨운 집착으로 탄생시킨, 35년 만에 갖는 정규 항공모함이자 대영제국 해군 역사상 최대의 군함으로 기대를 받아왔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한 여왕과 영국 해군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암울한 영국 국방의 속내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한때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영국 해군이지만, 영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룬 후 경제는 줄곧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연히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해군력에 쏟아 부을 돈도 없었고, 많은 군함들을 해외에 팔거나 폐기 처분해야 했다. 그 와중에서도 영국은 제국의 자존심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고, 그 상징은 대형 항공모함이었다.



영국 해군 최후의 정규 항공모함이던 HMS Ark Royal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문되어 전후 건조가 취소될 뻔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1950년 진수되어 1955년 취역한 5만 4천톤급 항공모함이었다. 이 항공모함은 미 해군의 대형 항공모함과 동일하게 증기 사출기로 항공기를 발진시키는 통상이륙 방식의 항공모함로 최신・최강으로 평가되던 F-4K 전투기와 자국산 Buccaneer 공격기 등 24대의 전투기와 4대의 Gannet AEW 조기경보기, 9대의 Sea King 대잠헬기 등 40여 대의 함재기를 운용했다..

영국은 극심한 재정 적자 속에서도 이 항모를 약 20여 년간 유지했지만, 1978년 제2차 오일 쇼크가 터지면서 경제 공황에 가까운 위기속에 1978년 퇴역시켰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이 마이너스 성장과 두 자릿수의 인플레이션, 그리고 극심한 재정적자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경제난에서도 항모 유지에 집착한 영국은 경항공모함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Invincible급 항모 3척을 건조해 실전에 배치했다. 배 이름은 ‘무적(Invincible)’이었지만, 2만톤의 작은 덩치에 Sea Harrier 수직이착륙 공격기만 운용할 수 있는 소형항모를 20여년간 운용한 결과 그 한계가 분명했기에 미국처럼 대형 항공모함 도입을 추진하며 불태우며 Queen Elizabeth 급 차세대 항공모함 사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물로 7월 4일은 35년 만의 정규 항공모함의 진수식을 가졌지만, 영국 언론들은 비판적 입장을 전하고 있다.
BBC는 특집 보도를 통해 “2008년 계획 당시 2척 건조에 39억 파운드 정도의 예산이 들 것이라던 Queen Elizabeth급 항모 간조비가 62억 달러로 치솟았다”고 꼬집었다.


영국 정부는 극심한 재정위기로 인해 지난 2011년부터 대규모 군장비 감축을 시행하면서 영국군의 각종 무기들을 신형・구형 가릴 것 없이 ‘바겐세일’하고 있다. 4,200톤급 방공 구축함을 100만 파운드(약 17억원)에 내놓는가 하면 대당 1,800억 원 넘는 가격에 구매해 3년도 채 쓰지 않은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반값에 시장에 내놓았다. 전투기를 매각하면서 파일럿이 필요 없어지자 4년간 공들여 육성한 공군사관학교 생도 100명에게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언론들은 값비싼 대형 항공모함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며 항모 도입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지만, 영국 해군은 멀쩡한 다목적 구축함(Type 23)을 해외에 매각하고, 신형 방공 구축함(Type 45) 도입 계획을 대폭 축소하면서까지 항공모함은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렇게 강력한 의지로 탄생한 Queen Elizabeth 항공모함은 길이 280m, 폭 73m에 72,000톤에 달하는 덩치를 자랑하는 대형 항모이다. 세계에서 가정 강력한 Rolls-Royce MT30 신형 가스터빈 등 최신 동력 장치를 갖췄고, 항해용 아일랜드와 항공기 관제용 아일랜드를 독립해 설치하는 등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다.

탑재항공기는 F-35B STOVL형 공격를 최대 40대까지 탑재하며, AW-101 대잠헬기 등 고가의 헬기들도 다수 탑재된다. 강력한 항공기 운용을 위해 사출기를 통한 이륙방식의 항모로 건조되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취소되고, 스키 점프대를 운용하는 STOVL 항공모함으로 건조됐다.


그러나 화려한 모습은 여기까지다. 당초 2척이 건조되어 취역할 예정이었던 Queen Elizabeth급 항모중 2번함 HMS Prince of Wales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건조 취소 또는 건조 후 해외매각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5조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대형 항공모함을 구매할 나라가 있겠냐는 여론에 건조 취소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함재기 F-35 역시 도입 계획이 불투명하다. 당초 영국은 올해까지 36대의 F-35B 전투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야 했지만, 현재까지 영국에 인도된 F-35B는 3대에 불과하며, 확정된 구매 예산은 14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영국 정부의 재정 상황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F-35B의 가격은 호위함 1척 가격 수준을 넘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며, 항모 역시 천문학적인 유지비가 예상되어 여론의 질타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영국 해군은 모든 것을 버려 가며 전력을 쏟아 부어 35년 만에 찬란했던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딴 최첨단 항공모함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 항공모함은 취역도 하기 전에 적의 어뢰나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예산 부족’이라는 위협에 침몰할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서울신문 2014. 7. 4)